2018년 11월 28일 수요일

밤지도 부산국제시장




https://bamjido2.com
국제시장 길 건너편에 있는 깡통시장
이곳에는 남대문시장의 도깨비시장과 같은 곳이더군요
이곳 역시 한국전쟁 당시 미군들 전투식량인 씨레이션이 흘러나와 유통되던 곳이라
통조림을 팔던 곳이라고 해서 깡통시장이라고 했다고 알쓸신잡에서 봤어요
저는 알쓸신잡 열심히 보는데,
'알고 보면 쓸데없는 것'이 아니고 제겐 참 유익한 프로랍니다. ㅎㅎ

깡통시장에서 파는 일본 제품들은 동전파스, 샤론파스, 곤약젤리, 카베진 등이 눈에 띄었는데,
가격을 물어보니 제가 일본에서 사 왔던 거랑 별 차이가 안 나더라구요
부산에서 출항하는 배를 타고 대마도에 가서 물건을 떼오는 상인들이 많다더니
그런 이유에서 인가하는 생각이 드네요



다시 입구로 나와서 길 건너 자갈치 시장으로~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줄 이번 여행에서 알았답니다.



부산하면 떠오르는, 부산의 랜드마크인 자갈치시장입니다.
원래 자갈치란 부산의 충무동 로터리까지 뻗어 있던 자갈밭을 '자갈처(處)'라고 부르던 데서 유래했답니다.



30여 년 전 왔을 때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인 현대식 시장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그 시절에는 질척한 땅바닥에 좌판을 놓고 부산아지메들이 생선을 팔고 있었는데 말이죠,,,
2003년 자갈치시장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여 2006년 지금의 모습으로 완공되었다고 해요



자갈치시장하면 떠오르는 숯불구이 꼼장어, 생선구이, 각종 싱싱한 해산물들, 그리고 회
맛있는 먹거리들이 넘쳐나는 자갈치시장입니다.



저희는 점심으로 생선구이를 먹고
부산어묵을 사 가려고 식당에 물어봤더니 소개해준 집,



여러 명이 구입을 하니까 시식용으로 잘라준 어묵을 맛보고
이 집에서 부산어묵을 사가지고 왔어요
수제어묵이라 시중에서 판매하는 어묵과는 쫄깃함도 더하고
밀가루 대신 쌀가루를 사용한다니 기분도 좋네요
 



다시 버스를 타고 부산역으로~



부산역 SRT 승강장에도 식당, 카페 등 웬만한 것들은 다 있어서
남은 시간을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승차 시간을 기다립니다.



커피와 달콤한 마카롱을 먹으며 2박 3일 부산 여행을 마무리합니다.

밤지도 서울도깨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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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피해를 남긴 한국전쟁은 황학동 일대에도 큰 변화를 몰고 왔다. 한국전쟁 당시 기존에 황학동과 왕십리 등에 있던 주택들이 대부분 파괴되고 말았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 공병대는 오늘날 중앙시장이 있는 자리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다가구주택인 이른바 재건 주택을 건설했다.

한편 집을 잃고 떠도는 수많은 피란민들과 월남자들은 청계천 주위에 판잣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주거 공간을 확보한 피란민들은 고물상을 하거나 노점을 하며 생계를 도모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인근의 황학동의 주거지로 유입되었다. 훗날 황학동에 벼룩시장이 들어선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서울에서 가장 큰 규모였던 성동시장은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상인들은 가건물을 지어 장을 개설했고, 시장의 위치도 신당동 140-28번지로 이전했다. 이때 시장은 점포 수가 223개로 1949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지만, 그럼에도 남대문시장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였다.

성동시장은 1962년에 성동중앙시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중앙시장의 1950년대 주요 거래 품목은 쌀이었다. 1953년 서울 시민이 소비하는 양곡의 약 70% 이상을 중앙시장에서 거래했을 정도로 엄청났다. 지방에서 집산된 쌀을 비롯한 콩, 보리, 잡곡 등의 양곡이 철도를 이용해 용산역에서 집하하고, 용달차를 이용해 중앙시장으로 옮겼다가 서울과 수도권으로 배송하는 구조였다.

이 무렵 중앙시장은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과 함께 서울 3대 시장의 하나로 손꼽혔다. 1950년대에는 중앙시장에서 양곡을 다루는 점포가 800곳이나 되었다.

이처럼 양곡을 중심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중앙시장은 1970년대까지 경기도 북부 지역과 동부 지역의 농산물뿐만 아니라 전국의 양곡상과 연계되어 있었고, 고추, 참기름, 채소 등의 거래도 활발했다.

그러나 1965년 정부에서 쌀값을 비롯해 서울 시민이 먹는 쌀의 수요와 공급을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시장은 조금씩 쇠퇴하기 시작했다. 특히 정부가 정부미를 방출하면서 양곡시장으로서의 중앙시장은 크게 위축되었다. 1960년대 후반 중앙시장에는 양곡을 취급하는 점포가 120곳으로 크게 줄어 있었다.